이상한 정상가족

📝 삶은 개인적으로, 문제 해법은 집단적으로 하는 것 - 스웨덴과 한국의 차이


🔖 블룸은 세상을 더 낫게 만들려면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어보는 공감력 향상보다는 되레 한발 물러나 객관적이고 공정한 도덕에 근거해 판단하는 이상적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 진화심리학자 스티븐 핑커는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에서 “낯선 사람을 친구와 동등하게 느낄 정도로 공감의 기울기가 평평해지기를 바라는 것은 20세기 최악의 유토피아적 이상과 다르지 않다”라고까지 신랄하게 비판했다. 핑커는 공감은 이타성을 촉진할 수 있고, 다른 계층에 속하는 사람의 관점을 취하면 그 계층에게 공감이 확대될 수 있지만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감정이입의 문명’을 추구하면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족벌주의처럼 감정이입과 공정성이 상충되는 예도 많기 때문이다. 핑커가 ‘네 이웃과 적을 사랑하라’보다 더 낫다고 추천한 이상은 다음과 같다. “네 이웃과 적을 죽이지 마라. 설령 그들을 사랑하지 않더라도.” ... 사람에게 해서는 안 될 짓의 선을 정하는 게 먼저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상상해보는 공감의 감수성을 높이려는 노력은 물론 필요하지만 이를 개인의 도덕적 과제, 감성의 영역으로만 남겨두어선 안 된다. ‘우리’의 폭을 넓히려는 교육이 공교육에 제도적으로 포함되어야 하고, 차별금지법과 이주아동권리보장기본법을 제정해야 한다. 그게 우리를 같이 살아가게 해주는 공감의 제도화다. 역지사지하고 공감하는 능력보다 사적 관계에선 예의, 공적 관계에선 정책과 제도가 우리의 공존을 가능하게 해주는, 더 인간적인 장치다.